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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에 얽힌 5가지 이야기

마을에서 흔히 보는 나무

by 소우행 2020. 7. 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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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대나무와 친했다. 집이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나무와 함께 살았다. 대나무로 활과 화살을 만들고 놀았으며, 어른들이 대나무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걸 보고 자랐다.

 

밤에는 화장실, 예전에는 뒷간이라 해서 집 뒤에 따로 있는, 가면 바람에 대나무가 쓰쓰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림자가 흔들려 놀라 뛰쳐나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대나무는 우리나라에 14종류나 있지만, 왕대[苦竹], 솜대[淡竹], 맹종죽(孟宗竹) 3종이 가장 많고, 이 중에서도 왕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 검은 오죽과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어 쓰는 조릿대가 있다.

 

왕대는 중국이 원산으로 죽순의 맛이 약간 쓰다고 하여 고죽(苦竹)이라고 한다. 옛날 아낙네들이 머리를 곱게 빗던 빗이 왕대로 만든 것이었다. 울산광역시가 태화강 강변에 왕대를 심어 십리숲을 만들었다.

 

왕대는 굵고 긴 반면 솜대는 가늘고 짧다. 맹종죽은 굵고 짧다. 맹종죽(孟宗竹)은 눈이 쌓인 겨울에 죽순을 캐서 부모님께 효도한 맹종(孟宗)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전남 담양지방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주로 맹종죽이며, 기타 왕대와 솜대도 재배하고 있다. 한국 최대의 대나무 서식지는 전남 담양이다. 한국 대숲의 34%가 이곳에 있다.

 

담양 대나무는 1000년 전인 고려 때부터 심었다고 한다. 죽물 시장이 오래전부터 발달했으며, 매년 죽녹원을 중심으로 담양대나무축제가 열리고 있다.

 

솜대는 이름처럼 대나무 마디 아래쪽에 솜처럼 하얀 가루가 붙어있다. 죽순이 맛이 있어 감죽(甘竹)이라고도 한다.

 

대나무

 

(대나무에 얽힌 이야기 하나)

대나무는 약 50년을 주기로 꽃을 피운다. 대나무 품종과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에 대나무 숲 전체가 꽃을 피워 씨앗을 엄청나게 떨어뜨린 후 대밭이 완전히 죽어 버린다.

 

옛 속담에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게 되면 그 대밭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대밭은 어린 대는 세우고 나이 많은 대는 벌채하는 것이 죽림을 관리하는 기본이다.

 

어쨌든 대나무꽃이 한꺼번에 피면 장관이다. 수많은 대나무가 아니라, 사실 대나무는 몇 개의 개체가 땅속줄기를 뻗어 큰 대밭을 만들므로 환경에 따라 한꺼번에 핀다.

 

대밭을 보면 늦봄에 비가 온 후에 죽순이 여기저기서 쑥쑥 올라온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대나무는 생장하기 시작하여 수십 일(왕대 2040, 솜대 2545, 맹종죽 3050)이면 거의 다 자란다. 하루에 최대 60cm씩 자란다.

 

판다

 

(대나무에 얽힌 이야기 둘)

대나무만 먹고 사는 동물이 판다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귀여운 동물인데 오직 대나무만 먹는다. 판다도 처음에는 다른 곰처럼 육식도 했지만 무슨 연유인지 초식동물로 변했다.

 

초식동물은 4개의 위를 가지고 충분히 소화해서 영양을 섭취하지만 판다는 위가 하나이고, 대나무도 사실 큰 영양가가 없다. 그래서 판다는 하루 12시간 먹는다.

 

그렇게 먹어도 부족한 영양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첫째 에너지를 적게 소비한다. 에너지 소비량이 적기로 유명한 나무늘보 정도임을 학자들이 밝혀냈다.

 

둘째는 판다가 사는 자연을 추적한 결과 죽순이 나는 시기를 따라 산을 오르면서 죽순을 많이 먹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나무보다 죽순이 영양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오죽헌

 

(대나무에 얽힌 이야기 셋)

검은 대나무인 오죽(烏竹) 이야기이다. 조선의 대학자인 율곡(栗谷) 이이선생이 태어난 집이고,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살았던 집이 강릉에 있는 오죽헌이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이율곡의 사촌인 권처균의 호에서 유래했다. 권처균은 외할머니인 용인이씨에게서 집을 물려받았는데, 집 주위에 오죽이 많아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고 정했다.

 

건립 연대는 단종 때 병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고택인 점을 미루어, 15세기 후반에는 지어졌을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에는 사위가 처가 근처에 살면서 집도 몰려 받았다.

 

최응현의 집은 그의 사위이자 신사임당의 외조부였던 이사온(李思溫)에게 물려졌다. 이사온과 같이 살던 사위 신명화(申命和)에게는 딸이 다섯 있었는데, 둘째 딸인 신사임당은 덕수이씨 집안의 이원수와 결혼을 하였고, 넷째 딸은 안동권씨 집안의 아들과 결혼을 하였다.

 

오죽헌이 속해 있는 고택은 묘지를 관리하는 조건으로 넷째 딸의 아들인 권처균에게 나누었다. 이때부터 오죽헌의 소유권은 안동권씨 집안의 후손들에게 물려졌다.

 

미추왕릉

 

(대나무에 얽힌 이야기 넷)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이다. 신라 제14대 유리왕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을 공격해 왔는데 신라군이 당해내지 못했다. 이때 귀에 댓잎을 꽂은 이상한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 적을 물리쳤다.

 

승리 후 그 이상한 군사들은 갑자기 없어지고 미추왕의 능 앞에 댓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미추왕이 도운 것인 줄 알고 그 능을 죽현릉(竹現陵)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낙산사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대나무에 얽힌 이야기 다섯)

동해 낙산사에 얽힌 이야기이다. 의상대사가 낙산의 바닷가에서 관음보살의 현신을 만나 그 계시대로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나는 곳에다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모셨는데 그 절이 낙산사라는 것이다.

 

사람이 대나무를 이용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전쟁 무기였던 활, 화살, 창이 모두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산울타리 또는 주민들의 방호용으로도 사용했다.

 

붓도 대나무에 꽂아 만들며, 퉁소, 피리, 대금 등 악기도 대나무로 만든다. 담뱃대, 낚싯대, 부채, 가구, 어구, 장대, 의자, 바구니, , 빗자루, 완구 등 수많은 일용품을 제조하여 써왔다.

 

그리고 땅속줄기로는 단장이나 우산대를 만들며, 대의 잎이나 대껍질은 식료품의 포장용으로 쓰이는 등 대나무의 이용은 참으로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수요량이 급증하는데 반해 생산량이 수요량의 절반에도 못 미쳐 연간 20만 속 이상의 대나무를 일본이나 대만 등지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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