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이곳은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가 않아서 나무가 낙엽을 만들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걸친 옷을 바꾸어 입을 필요가 없는 상록수들 사이로 꽃향기가 좋은 백서향이 있다. 다른 나무들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백서향은 깨어 있었다.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이 세상에는 향기로운 꽃들이 많다. 수선화의 은은한 향기도 어느 화려한 꽃에 뒤지지 않는다. 나무를 보면 겨울을 앞두고 피어나는 금빛 꽃의 금목서와 은빛 꽃의 은목서, 그리고 향기가 백 리를 가는 백리향과 이보다 더 멀리 퍼지는 섬백리향이 있다.
이들보다 향기가 더 멀리 퍼지는 꽃이 천리향이라는 별명이 붙은 백서향이다. 백서향은 우리나라와 일본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다. 산림청지정 희귀종으로 관리되고 있는 수종이다. 학명은 Daphne kiusiana Miq.이다.
백서향은 팥꽃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활엽 관목이다. 키는 오래도록 자라봐야 1m 남짓으로 작은 나무이다.
잎은 줄기를 따라 어긋나게 달리며 가지 끝에서는 아주 촘촘히 자라서 마치 가지 끝에서 돌아가며 난 듯 보인다. 손가락 길이쯤 되는 길쭉한 잎은 상록성이므로 늘 푸르게 반질거리며 달려 있다.
꽃은 희고 작은 십자 모양의 꽃들이 야무지게 다발을 이루고 있다. 마치 신부의 부케를 보듯 순결한 흰 꽃을 가운데 두고 푸른 잎새로 둘레를 두른 것같이 보인다. 백서향은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다르며, 두 나무 모두 꽃에는 암술, 수술이 다 있으나 암꽃은 암술이 크고 수꽃은 수술이 더 크다.
백서향은 꽃을 일찍 피운 만큼 열매도 일찌감치 달린다. 다른 식물들이 한창 꽃 피우기에 열중하는 5월이나 6월이 되면 꽃이 달렸던 자리에 붉고 둥근 열매가 생긴다.
백서향이 한두 포기가 아니라 무리 지어 자라고 있는 곳이 2군데가 있는데, 제주도 집단과 거제도 집단이다. 2집단은 형태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제주도 집단의 백서향은 잎이 좁은 타원형이며, 화탁통 겉에 털이 거의 없었으며, 암술머리와 자방사이에 절이 없다. 꽃은 7~20개 내외로 달리며, 거제도 집단의 꽃 크기에 비해 크게 나타났다. 꽃의 색은 백색이다.
거제도 집단의 백서향은 잎이 넓은 타원형이며, 화탁통 겉에 짧은 털이 밀생하며, 암술머리와 자방 사이에는 절이 있다. 꽃은 3~7개 내외로 달리며, 제주도 집단에 비하여 꽃의 크기가 작다. 꽃의 색은 유백색이다.
백서향의 친척인 나무로 중국이 고향인 서향이 있다. 중국인들은 이 나무의 꽃을 극락의 꽃이라고 생각했다. 비구니가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향기에 이끌리어 가서 이 꽃 한 송이를 꺾었는데, 나중에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이 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잠을 자다가 알게 된 꽃이라 하여 수향이라고 하다가 극락으로 이끄는 상서로운 향기의 나무라 하여 서향이 되었다고 한다. 서향은 백서향과는 꽃 빛깔부터 조금 다르다. 순백의 백서향에 비해 서향은 꽃잎의 안쪽은 희고 바깥쪽은 진한 자주색이다.
백서향의 변종으로 중국에서 가져와 기르는 백화서향, 흰서향이라고도 부르며 백서향과 구분한다. 잎 가장자리에 연한 미색을 두른 무늬서향, 분홍색 꽃이 피는 분홍서향 등이 있다. 서향을 두고 외국에서는 달콤한 향이 나는 서향나무라는 뜻의 Sweet smelling Daphne 라고 부른다.
백서향은 정원 한편에 심어두고 꽃과 향기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꽃나무이지만, 추운 지방에서는 살 수 없으므로 중부지방에서는 실내에서 키워야 한다. 백서향이나 서향을 키우려면 따뜻한 곳이 우선이고 건조한 데서는 강하지만 습기에는 매우 약하므로 배수지여야 한다.
한방에서는 백서향이나 서향을 같이 사용한다. 부위에 따라 쓰임새가 다른데 뿌리는 백일해, 가래 제거, 타박상에 또는 지혈제, 강심제 등으로 처방되며 껍질이나 잎은 어혈, 소독, 종창이나 총독, 감기 후유증 등에 다른 약재와 함께 처방하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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